2008년 09월 29일
월 스트리트(Wall Street)-1987: "greed, for lack of a better word, is good"
감독: 올리버 스톤
주연: 찰리 쉰
마이클 더글라스
마틴 쉰
다릴 한나
'Greed(탐욕)'가 최근 미국의 유행어인 듯하다. 오바마가 말하는가 하면 맥케인도 말하고, 서로 상반된 후보를 지지하는 신문들도 하나같이 탐욕에 대해 말한다.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을 것 같은 경제위기를 불러온 놈이 누구인지 몰라 답답한데 화를 낼 대상을 찾을 때도 어김없이 누군가의 탐욕이 성토의 대상이 된다.
"경제위기? 그게 다 탐욕스러운 xxxxx놈들이 벌인 yyy 때문이지." 여기서 xxxxx는 당연히 월스트리트를 뜻하고, yyy는 이들이 상위1퍼센트의 명석한 두뇌를 짜내 고안해낸 화려하나 위험하기 그지없는 방정식으로 이루어지는 돈놀이를 뜻한다. 면책특권을 가지고 투자자의 돈을 가지고 공놀이를 하다가 채무자가 망하고, 채권자가 망하고, 회사가 망하고, 국가의 경제가 휘청거려도 수백만 달러의 보너스를 지급받으며 화려하게 퇴장하여 남태평양의 그림 같은 휴양지에서 잘 먹고 잘 사는 이들과 그들의 러시안 룰렛 같은 투자수법 말이다. 물론 이들이 비합법적인 행위를 한 것은 아니다. 이들은 차려진 무대의 연기자에 불과했다. 진정한 근원은 그들이 마음껏 자신들의 '탐욕'을 펼칠 수 있게 허용해 준, 미국 사회에 만연한 기회주의/극단적 자유주의가 내포하고 있었던 '비윤리성'인 것이다.
<월 스트리트>는 지금의 미국의 위기를 가져온 것과 같은 그런 탐욕을 냉정한 시선으로 해부해 관객의 눈 앞에 흔들어대는 그런 영화다. 올리버 스톤의 전성기에 만들어진 이 작품은 탐욕스러운 육식동물인 월가의 기업 사냥꾼 고든 게코(마이클 더글라스)와 그의 주구가 되는 야심찬 증권거래인 버드 폭스(찰리 쉰)의 흥망성쇠를 통해 화려하지만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심연과도 같은 탐욕과 그에 대비되는 진실하고 양심적인 삶 사이에서 교훈적인 이야기를 이끌어내고 있다. 그렇다. 교훈적이다. 또한 전형적이기도 하다. 이 시절 올리버 스톤의 모국에 대한 비판의 시선은 플래툰에서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날카롭긴 하지만 독창적이지는 않다. 최첨단을 달리는(그래 봤자 1985년이긴 하지만) 사업장에서 일하는 젊고 유능한 증권거래인들의 일과를 그대로 보여주는 도입부에서부터 시작하는 이 영화는 한 야심찬 청년의 성공과 파멸 이야기이기도 한 동시에 한 편의 사회고발 다큐멘터리와도 같다. 그리고 그 카메라는 세계에서 가장 치열한 경쟁이 펼쳐지는 콘크리트 정글의 가장 어두운 단면을 시종일관 놓치지 않고 보여준다. 디테일이 살아 있고, 냉혹하고, 추악하긴 하지만 우리가 모르던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서 있는 두 인물의 캐릭터 역시 지나치게 전형적이다. 찰리 쉰은 성서의 욥, 혹은 회개자와 같은 역할을 연기하고 마이클 더글라스는 올리버 스톤이 겨냥하는 탐욕 그 자체의 현신이다. 특히 마이클 더글라스의 입을 빌어 올리버 스톤은 하고 싶었던 말들을 노골적으로 토해낸다.
"상위 1퍼센트가 50퍼센트의 부를 소유하는 사회야." "나는 창조하지 않네. 소유할 뿐이지." "자유시장경제는 민주적이야."
"탐욕은 좋은 것이야."
역설법을 통해 표현한, 자본주의 사회의 어두운 면을 고발하는 순진한 좌파적 외침이라고나 할까?
이들이 벌이는 이야기도 딱히 개성적이지는 않다. 그렇게 추구하던 탐욕을 버린 주인공은 사회적으로는 파멸하나 고든 게코와 정 반대의 인물인 자신의 아버지(찰리 쉰의 아버지 마틴 쉰: 미드<웨스트 윙>의 주인공이기도 한 이 열렬한 민주당원 할아버지가 직접 아버지 역으로 출연하신다)의 미덕-열심히 일하는 노동자의 가치-을 깨닫고 그 진실한 삶으로 돌아온다...솔직히 비슷한 시선을 견지하는 2005년작 <시리아나>가 각본의 신선도 면에서는 훨씬 나았던 것 같다.
그러나 전형적임에도 불구하고 <월 스트리트>는 여전히 흥미로운 영화다. 적어도, 현재와 같은 앵글로-색슨 자유시장경제가 지배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 화려함 뒤의 치부를 파헤치는 고발의 시선은 뉴스나 신문 1면 뿐만 아니라 스크린 위에도 언제까지나 존재할 것이다. 물론 재미없다면 영화가 아니라 2시간짜리 다큐멘터리이겠지만 그 각본의 전형성을 제외하면 <월 스트리트>는 감독의 정신과 배우들의 연기 그리고 탐욕이 '살아 움직이는'작품이다. 찰리 쉰과 마틴 쉰, 그리고 특히 마이클 더글라스는 훌륭한 연기를 보여주고 있고, 차가운 맨해튼의 풍경을 낱낱이 해부하는 카메라의 시선 역시 효과적이다. 전형적인 작품에는 언제나 통속성이 따라붙게 마련이다. 그러나 잘 만들었을 경우에는 통속성마저도 잠재울 만한 감동이 따라오는 법이다. 이 시기 올리버 스톤의 영화들은 분명 그와 같은 수준을 갖추고 있었다.
# by | 2008/09/29 23:26 | 영화읽기 | 트랙백 | 덧글(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