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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E(Wall-E)-2008

감독: 앤드루 스탠슨

목소리: 벤 버트
           엘리사 나이트
           시고니 위버
           제프 갈린
           프레드 윌러드
           존 라첸버거
           캐시 나지미




월-E의 장면들을 따라가다 보면 적지 않은 부분들에서 큐브릭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 대한 오마쥬를 발견할 수 있다. 액시엄의 함교에 울려퍼지는 도나우 강, 짜라투스트라, HAL-9000로봇과의 대결...올해 2008년이 <2001...>이 개봉된 지 40년 되는 해인 듯 한데, 역시 픽사 애니메이터들도 제작하면서 그점을 염두에 두고 있었던 듯 하다. 우주와 로봇이 등장하는 애니메이션을 만들면서 자신들이 보며 자란 SF의 영원한 고전에 대한 존경을 표하는 것이 그들에겐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아마도 그 장면들은 <2001...>을 보며 자랐을, 아이들을 안고 극장에 온 부모 세대들을 위한 보너스가 아니었을까 한다. 어쨌든 <2001...>은 귀여운 로봇의 앙증맞은 모험을 기대하는 아이들에게 보여줄 만한 영화는 아니니까.

<2001...>이 초월적 체험 혹은 우주에 홀로 던져진 듯한 숭고함, 그도 아니면 한없이 쏟아지는 졸음을 느끼게 한다면 월-E는 명백히 디즈니랜드적인 감성을 충족시켜준다. 넘치는 상상력, 천진난만함, 두근두근한 첫만남과 끝에 밝은 미래가 기다리고 있는 모험...우리가 어렸을 때에 본 <알라딘>, <라이언 킹>의 바로 그 느낌이다.

변한 것은 비교적 외적인 요소들이다. 한 시대가 지나 셀 그래픽은 완벽한 3D그래픽으로 대체되었다. 픽사의 기술력은 언제나 그랬듯이 매우 좋다. 미국 애니메이션다운 풍부한 감정 표현력과 단순하고 귀여운 디자인은 3D임에도 불구하고 거의 모든 다른 애니메이션들을 능가하는 몰입도와 자연스러움을 보여준다. 2008년까지 시간이 흘렀지만 3D애니메이션의 디자인은 여전히 '보다 사실적으로'보다는 '보다 만화적으로'가 유효한 듯하다. <파이널 판타지>, <애니매트릭스>단편, <어드밴트 칠드런>...실사 지향의 애니메이션들도 점점 기술력이 증가하고는 있지만 왠지 모르게 밀려드는 어색함은 줄어드는 것 같지가 않다. 인간은 인간을 닮은 물체일수록 더 큰 혐오감을 느낀다는 말이 있는데 정말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주연들이 로봇이라는 점은 그러나 월-E에 픽사의 이전 작품들과는 조금 다른 특색을 부여하기도 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단순히 로봇이라는 점이 아니라 이들이 인간의 언어를 거의 쓰지 않는다는 점이다. 말을 하지 않음으로써 로봇들은 주체성을 잃어 가는 28세기의 인간들과 자신들을 구분짓는다. 유일하게 인간의 언어를 유창하게 사용하는 항해사 로봇이 현실세계의 어른처럼 악한 존재라는 점은 우연이 아니다. 로봇들을 주인공으로 만드는 것은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그들의 감정과 행동이다. 실제로 월-E의 로봇들은 인간이 따라갈 수 없는 능력을 제외하면 어린아이와 같은 존재들이다. 말을 못해 웅얼거리고 행동은 미숙하지만 순수하며 거짓이 없다.  감정을 담은 "월-E!" 한마디에는 C3PO의 백 마디 수다보다도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다. 인간의 언어를 쓰지 않는다는 점에서 월-E의 로봇들은 신비감이라는 또 하나의 점수를 따고 있는 것이다. 인간처럼 말하는 순간 이미 로봇들은 인간과 똑같아진다. <라이언 킹>의 심바가 사자의 탈을 쓰고 있지만 실제로는 사자보다는 햄릿처럼 행동하는 인간에 가까운 존재인 것과 마찬가지다. 반면에 월-E의 로봇들이 지향하고 있는 것은 로봇의 탈을 쓴 인간이 아니라 '인간이 아니지만 인간보다 인간적인 존재'이다. <ET>다. 그렇지 않은가?

때로는 대사만으로는 보여주고자 하는 것의 반도 설명할 수 없는 순간이 있는 법이다. 그리고 그것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언어에 익숙해진 어른들보다는 보다 근원적인 감정에 가까운 아이들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월-E는 <ET>와 같은, 무심한 어른들이 닿을 수 없는 세계에 닿아 있는 작품이다. 본인의 경우에는 무심한 어른이어서 그런지 이 픽사의 신작이 어린 시절의 솜사탕처럼 달콤하기도 했지만 떨떠름한 땡감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다. 더 이상 순수하지 않으니 당연할 게다. 그도 아니면 달에 꽂힌 성조기나 백악관 브리핑룸의 레이건을 연상케 하는 Buy N Large사의 사장의 모습, 백인 아니면 흑인밖에 없는 액시엄의 인종구성, 엔딩씬에 비치는 북미대륙밖에 보이지 않는 지구의 모습에 괜히 열받아서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 어차피 미국 꺼니까 당연한 거긴 한데...

by vonovox | 2008/08/19 22:27 | 영화읽기 | 트랙백(1)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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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스테판's Movie .. at 2008/08/20 22:22

제목 : [리뷰] 월-E (WALL-E, 2008)
우리나라에서는 어른들이 종종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아홉수'를 조심하라고 말이죠. 이는 픽사에게는 통하지 않나 봅니다. 하기는 소포모어 징크스도 가뿐히 무시해버린 픽사에게 이런 일종의 징크스 따위는 애초에 범접을 못하는 것일지도요. 픽사의 아홉번째 장편 애니메이션 "월-E"는 아름답고 장엄한 우주를 비추며 시작됩니다. 그리고 화면은 그 우주의 모습을 지나 황량한 지구를 보여줍니다. 아무도 살지 않는, 쓰레기 더미만 남은 지구. 그 안에 작은 ......more

Commented by 갱곡 at 2008/08/19 23:05
인간은 인간을 닮은 물체일수록 더 큰 혐오감을 느낀다는 말이 있는데 정말 그런 것 같기도 하다.
-> 란 말이 너무 가슴 깊숙이 와 닿네요 .. 리뷰 잘 보았습니다 /
Commented by vonovox at 2008/08/20 10:41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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